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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엽동성당

말씀과 함께, 공동체와 더불어

사제의글

2015-07-27 01:11

연중 17주 월요일

2,005
김오석 라이문도

하늘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겨자씨는 어떤 씨앗보다도 작지만, 자라면 어떤 풀보다도 커져 나무가 되고 하늘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인다.”(마태 13,31-32)

 

모두가 떠나간 텅 빈 교리실에 홀로 남아 휴지를 줍고 책걸상의 줄과 열을 맞추던 할머니를 뵌 적이 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그러고 있는 할머니를 바라보다 그분 마음에 살고 계시는 예수님을 느낄 수 있었다. 할머니는 하늘나라를 살고 있었고 또 하늘나라를 향해 순례하고 계셨다. 그냥 나의 느낌이었다. 나는 과연 이미 시작되었으나 아직 완성되지 않은 실재인 하늘나라의 작은 씨앗 하나 가슴에 품고 살고 있는가?

 

하늘나라는 예수님 바로 그분 자체이시다. 마음속에 예수님을 품고 있는가의 여부가 하늘나라를 지금 여기서살고 있느냐, 하늘나라를 향한 순례의 여정에 있느냐의 판단 기준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하늘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겨자씨는 1년생 식물인데 지름이 1mm도 되지 않는 작은 씨앗이다. 그러나 2~3m의 높이까지 자란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겨자씨는 하늘나라 비유의 소재로 쓰지 않았다. 오히려 큰 나무, 즉 송백나무에 비교되었다.(에제 17,22) 이스라엘 왕국은 그렇게 크고 강하고 우람한 나무처럼 재건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소박한 겨자씨 비유는 강하고 우람한 모습과는 멀기에 이스라엘 백성이 그리던 이미지와는 사뭇 다르다. 예수님은 팔레스타인 지역 어느 정원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겨자씨와 나무를 하늘나라 비유의 소재로 제시함으로써 사람들이 숨 쉬고 살아가는 소박한 일상에서 시작되고 성장하고 완성되는 하늘나라를 가르치고 계신다.

 

너무나 작고 흔해서 사소한 것으로 치부되는 그런 것, 전혀 중요하지 않아 관심두지 않는 허드레 일들의 소중함을 깨우치는 말씀으로 받아들인다면 좋겠다.

사람들은 큰 것에 관심을 두고 감탄과 찬사를 보내는 것에 익숙하다. 세계 최고층의 건물, 육지와 섬을 연결하는 길고 멋진 다리와 해저터널, 대운하 같은 것 말이다. 그런 것들에 보내는 찬사는 어쩌면 현대판 바벨탑에 보내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보라! 인간의 놀라운 능력을!

신적 능력에 버금가는 실력을 뽐내는 셀 수 없이 많고 다양한 인간의 업적에 박수를 치고 찬가를 부르는 오늘날 우리의 처지가 암울하게 느껴지진 않는가? 인간의 놀라운 능력과 업적이 도드라질수록 자연은 더욱 더 신음하고 창조의 본모습은 사라질 뿐이라는 가슴 서늘한 현실을 아프게 받아들여야 한다.

작은 것에 대한 적극적 선택과 사랑이 필요한 때다. 작은 것의 특징은 잘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세계, 어쩌면 정신세계에 맞닿아 있는 것들이어서 마음과 영으로 보아야 볼 수 있고 감지할 수 있는 것들이다. 특별히 관심두지 않으면 무심코 지나칠 수밖에 없는 그런 것들 말이다.

 

작은 물건, 적은 돈, 작은 일, 풀 한포기, 작은 곤충이나 벌레, 보잘 것 없는 이웃에게 우리의 시선을 고정하는 오늘이 되게 하자. 오늘 내 주변에서 가장 작은 것 하나 찾아 가슴에 품고 기뻐할 수 있다면 좋겠다. 하느님나라가 바로 그 안에 있으니... 홀로 교리실을 정리하던 그 할머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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