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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엽동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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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의글

2015-07-04 01:52

성모신심미사(7월)

2,683
김오석 라이문도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요한 2,5)

 

묵주기도 빛의 신비 제 2단은 예수님께서 가나에서 첫 기적을 행하심을 묵상합시다.”이다. 이 첫 기적이야기에서 우리는 무엇을 묵상하며 기도를 바치는가?

간단하게 설명하면 이렇다. 혼인 잔치의 축하 분위기를 고조시켜 줄 포도주가 이른 시간에 바닥이 났다. 사람들의 어려움을 늘 사랑과 연민으로 살피시는 성모님의 예민한 감각은 바로 이런 당혹스러운 혼인 잔치집의 처지를 알아채시고, 당신 아들 예수님이 도울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상황을 알린다. “포도주가 없구나!” 무엇을 어떻게 해달라는 요청도 없다. 그저 현재의 상태를 알려줌으로써 아들 예수님이 무언가를 하리라는 믿음이 전제되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대답은 인간적으로 볼 때 상당히 매몰차다. “여인이시여, 저에게 무엇을 바라십니까? 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요한 2,4) 엄밀하게 살펴보면, 성모님의 생각과는 다른 차원의 당신 소명에 대한 언급을 하면서, 지금은 무엇인가를 할 때가 아니라는 뜻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성모님은 아랑곳하지 않고 일꾼들에게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고 말씀하신다. 아들의 의향이 정확히 무엇인지를 파악하지 못했지만, 아들 예수님을 존중하고 신뢰를 갖고 있었기에 잔칫집의 곤궁한 사정을 알리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는 성모님의 모습이다.

 

결과적으로 예수님은 물을 포도주로 바꾸어 파장의 위험에 처한 잔칫집에 질 좋은 포도주가 넘치게 함으로써 흥겨운 잔치가 계속될 수 있게 하신다. 이를 두고 오늘 복음은 갈릴래아 카나에서 표징을 일으키시어,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셨고, 제자들은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고 전한다.

 

우리는 이 장면을 묵상하면서 통상적으로 예수님의 때가 아직 오지 않았음에도 결국 표징을 일으키게 하신 성모님이야 말로 은총의 중재자이시고 어려움과 위험에 처한 당신 자녀들의 자비로우신 어머니로 드러나셨다고 고백한다.

 

단순히 물을 포도주로 바꾸는 표징으로 잔칫집의 곤란한 사정을 해소한 것으로 예수님의 영광이 드러나고 중재자로서의 성모님에 대한 신심을 고양하는 근거로 생각하기엔 이 카나의 표징이 상징하는 바는 그 상징과 내용이 훨씬 더 풍부하다.

 

먼저, 예수님은 성모님을 어머니로 칭하지 않고 여인이시여!”하고 부른다. 물론 예수니은 십자가 위에서 당신의 어머니를 애제자 요한에게 맡길 때도 여인이시여!”하고 불렀다. 예수님은 사실 이 호칭을 통해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공동체를 넘어 하느님의 말씀 듣고 따르는 제자 공동체에 더 큰 의미를 두었다. 어머니 마리아를 혈육의 관계를 뛰어넘는 차원 즉 아버지 하느님과의 차원에서 보았던 것이다.

 

둘째, 성서는 흔히 혼인 잔치를 하느님과 이스라엘의 관계에 대한 상징으로 하느님나라를 유비적으로 드러낸다. 그런데 잔치에서 술이 떨어졌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불순종과 범죄로 하느님과 이스라엘의 관계가 파국의 위험에 직면했음을 말해준다. 이제 예수님은 새 계약을 맺어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망가진 관계를 회복시키고자 하는데, 이는 예수님의 에 이루어 질 것이다. 예수님의 는 예수님이 새로운 하느님 백성을 위해 당신의 피를 쏟아 생명을 바치는 십자가 죽음의 를 의미하며 이를 통해 새 계약이 맺어짐으로써 관계 회복이 결정적으로 이루어진다. 이런 배경에서 포도주는 그분의 때가 왔을 때 즉, 십자가 사건의 시간에 예수님이 흘릴 피, ‘새 계약의 피를 상징한다.

 

셋째, 성모님은 물질적인 포도주, 곧 잔치 중에 떨어진 포도주를 말하지만, 예수님은 가 되어 십자가에서 흘리게 될 당신의 피를 상징하는 포도주를 염두에 두셨기에 저에게 무엇을 바라십니까? 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라고 반문했다고 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모님의 적극적인 중개는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 기적을 가능하게 했다. 성모님의 아들 예수님에 대한 믿음과 항구한 기도의 자세는 마침내 예수님으로 하여금 기적을 이루게 했음은 부인할 수 없다.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라는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강력한 성모님의 중재기도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익혀 이를 엄격하게 지키는 일은 때 이른 표징과 기적을 가능하게 하는 원천이 되는 것이다. 여섯 개의 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우는 수고의 땀방울은 예수님의 제자이기를 자청하는 우리들의 몫일뿐만 아니라 자녀들에게 좋은 것을 주시려고 언제나 연민과 사랑의 시선으로 우리 삶을 살피시고 도와주시는 성모님께 드리는 장미 꽃다발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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