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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엽동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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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의글

2015-07-03 02:42

성 토마스 사도 축일

2,076
김오석 라이문도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요한20,29)

 

믿음이란 과연 어떤 것일까?

보지 않고는 믿을 수 없다!’ 얼마나 명확하고 당연한 자기선언인가? 이 말은 토마스 사도의 의심이라는 말과 늘 쌍으로 움직이는 명제다. 그런데 사실 우리 역시 토마스 사도와 똑 같은 심정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믿음이란 그런 것이 아니다.

 

토마스 사도의 입장은 감각적인 구체적 경험과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것에 익숙할 뿐만 아니라 가시적이고 물질적인 실재(實在)를 우선시하는 현대인의 생각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그러나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모든 것이 명확하고 확실하게 증명된 것에 대해 믿는다는 말은 쓰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런 경우는 안다라는 단어가 훨씬 더 적절하다.

 

믿음이라는 단어는 뭔가 불확실하고 명확하게 드러난 것은 아니지만 신뢰할 만한 여러 정황이나 근거에 입각하여 아직 확실하지 않은 신비스런 일이나 사람 혹은 사건에 대해 존재 자체를 거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이를테면 평소 단 한 번도 거짓을 발설하지 않고 늘 진지하고 정직하게 살아온 그런 친구의 증언이라면 그 내용이 다소 황당하더라도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것과 같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기쁨에 겨워 외치는 다른 제자들의 우리는 주님을 뵈었소.”라는 말에 예수님을 직접 보고 만져보지 않고는 결코 나는 믿을 수 없다.’고 고집을 부리는 토마스 사도 앞에 나타난 예수님은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라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은 토마스 사도에게 하신 말씀이기도 하지만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예수님의 부활 발현을 직접 체험하지 못한 초대 교회 공동체의 많은 신자들에게 전하는 예수님의 메시지였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리고 더 나아가 오늘날 가시적이고 물질적인 실재에 치우쳐 얕은 믿음으로 세상의 유혹에 쉽게 걸려 넘어지는 우리들에게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이기도 하다.

 

초대 교회의 신자들은 자신들이 직접 부활하신 예수님의 발현을 체험하지 못했음에도 과연 이 말씀대로 주님의 부활 발현을 체험한 다른 이들의 증언을 그대로 믿고 따르는 믿음의 삶을 살았다. 토마스 사도가 외쳤던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이라는 신앙고백은 교회의 신앙이 되었고, 교회 공동체는 바로 이 전해 받은 믿음으로 끔찍하고 참혹했던 박해시기 마저 용감하고 기꺼운 생명의 봉헌으로 이겨내고 위대한 신앙을 오늘 우리에게 전해준 것이다.

 

사도 바오로의 증언이다. “나도 전해 받았고 여러분에게 무엇보다 먼저 전해준 복음은 이렇습니다. 곧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죄 때문에 돌아가시고 묻히셨으며, 성경 말씀대로 사흗날에 되살아나시어, 케파에게, 또 이어서 열두 사도에게 나타나셨습니다.”(1코린 15,3-5)

 

신뢰할 수 있는 사도들의 증언이 믿음의 근거이다. 토마스 사도의 고백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이라는 탄성은 오늘날 우리가 행하는 미사의 거양성체 때 마음 속 깊은 곳에서 터져 나오는 우리의 믿음이고 이 믿음은 세상 끝날 까지 신앙의 후손들에게 전해질 것이다. 우리 역시 보지 않고도 믿는 행복을 누리는 믿는 자들이기에 삶의 숱한 고난 속에서도 결코 주저앉거나 포기하는 일 없이 신앙의 순례여정을 계속해 나갈 것이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마주 뵙는 그날까지 그리고 하느님의 품에 안기는 그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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