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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엽동성당

말씀과 함께, 공동체와 더불어

사제의글

2015-07-02 07:16

연중 13주 목요일

2,622
김오석 라이문도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셨다. “얘야, 용기를 내어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마태 9,2)

 

언젠가 피정을 하면서 허락하고 싶지 않은 미래의 나의 모습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한 적이 있다.

여러분도 자신에게 일어나지 말았으면 하는 것의 순서를 정해보시길 바란다.

내가 도와주었던 가장 친한 친구로부터 배신을 당한다.

자녀가 불량한 비행으로 교도소를 들락거린다.

고혈압으로 중풍을 맞아 몸을 움직이지 못하고 치매를 얻게 된다.

성격차이와 가정불화의 고통 끝에 이혼을 하게 된다.

교통사고로 전신마비가 되어 전혀 거동할 수 없게 된다.

정밀 검사 결과 말기 암 선고를 받는다.

자녀에게 버림받고 쓸쓸하게 노년을 보낸다.

 

각자가 처한 조건과 상황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나 많은 사람들이 ③⑤를 앞으로 자신의 삶에서 피하고 싶은 것이라고 선택했다.

자기 몸을 스스로 움직일 수 없는 상황, 자유의지와 의식은 있으나 육신이 죽어버린 상태가 가장 끔찍한 고통이요 비극임을 말해주는 결과라 생각된다.

 

중풍병자! 이 한 목숨 모질고 질겨 훌쩍 이승을 떠나지도 못한 채 도와주는 사람 없으면 결코 살아갈 수 없는 비루한 삶을, 뼈아프게 서럽게 때로는 참을 수 없는 화와 분노로 뒤범벅된 부자유의 극치다. 견디기 힘든 수치심과 더불어 자존감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는 가장 가난한 처지의 영혼이다.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당연히 이 상황이 모진 세월이겠지만 ...거동불가의 병자와 함께하는 이들의 경우, 그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역지사지(易地思之)가 꼭 필요하다.

 

성서적 관점에서 인간은 영과 육으로 구분되는 존재가 아니다. 온전한 합일체이다. 따라서 히브리적 사고는 병의 치유도 육체적 치유와 심리적, 영적 치유를 따로 구분하지 않는다. 유다인들은 질병은 죄의 결과요 또 하느님의 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당시 유다 사회에서 질병은 사회적 단절과 영적인 자기 모멸을 동반하는 하느님의 저주와 다름없었다. 따라서 질병의 치유은 단순히 육신의 회복 차원을 넘어 사회적 지위의 회복과 하느님과의 새로운 내적 친교를 회복하는 전인적 치유과 구원의 의미였다.

 

오늘날 질병을 두고 단순히 죄의 결과라고 간주하는 것은 잘못된 판단이지만, 정신적 영적 차원의 결함과 결핍, 불안과 스트레스 등이 인간 육체를 병들게 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라 하겠다. 정신적 영적인 충만함과 평화가 건강을 가져오는 초석이고, 따라서 인간의 전인적 건강은 육신과 영혼의 조화에 있다. 의탁과 신뢰의 마음으로 고난을 맞이하고 극복하며, 기쁨과 감사의 마음으로 주어진 모든 것을 수용함으로써 내적인 평화를 누리며, 적당한 운동을 겸할 때 주어지는 자연스런 결과가 바로 전인적 건강이라 하겠다.

 

오늘 중풍병자를 앞에 두고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고 선언함으로써 중풍병자의 영적 결함을 우선적으로 치유한 다음 그를 일으켜 세우는 예수님의 행위는 단순한 질병의 치료를 넘어 한 인간을 하느님의 구원에 이르게 하는 전인적 치유와 구원의 표징이 된다. 물론 율법학자들은 죄의 용서가 오직 하느님께만 유보되어 있는 권한이라고 예수님의 이런 치유 행위를 신성모독이라고 비난하지만 그들은 아직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알지 못했다.

 

예수님의 이 치유와 구원의 선물은 믿음으로부터 시작되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

어떤 믿음인가? 그것은 우리가 하느님 안에 있다는 믿음이다. 하느님의 현존 앞에 하느님의 권능 안에 있다는 믿음이다. 예수님께서 체험하시고 가르치셨듯이 우리를 조건 없이 사랑하시고 돌보시는 아버지 하느님, 아빠 하느님 품에 내가 안겨 있다는 자각과 믿음이다. 아빠의 사랑이 그렇듯이, 하느님의 사랑이 나에게 하시려는 것은 최선의 것임을 신뢰하는 믿음이다. 내가 원하는 결과와 다를 수도 있으나 아빠 하느님의 뜻대로 나에게 모든 것이 일어나기를 기도하는 믿음이 참된 믿음이다. 그런 믿음 한 자락 붙들 수 있는 오늘이기를...

 

허락하고 싶지 않은 미래의 나의 모습이 제시하는 모든 항목은 피하고 싶은 것이 누구에게나 당연한 소망일 것이다. 그렇지만, 또 한편으로는 모든 항목이 나에게서 일어날 수도 있는 가능성임을 자각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일생이 하느님의 뜻대로 펼쳐지기를 기도하고 의탁할 수 있다면 좋겠다. 그 모든 것이 하느님의 영광을 이룬다는 확신으로 모든 것에 감사하는 그런 믿음을 청하는 오늘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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