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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엽동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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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의글

2015-06-30 22:26

연중 13주 수요일

2,594
김오석 라이문도

하느님의 아드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마태 8,29)

 

무덤에서 나와 예수님과 마주친 마귀 들린 사람들의 항변이다. 마귀들렸다 함은 악의 본성을 지녔다는 의미다. 악은 결코 신성의 밝은 빛을 좋아할 수 없다. 빛을 등지고서 어둡고 그늘진 곳을 주된 거처로 삼아 인간을 인간답게 살아가지 못하도록 끌어당기고 망가뜨리는 나쁜 힘이다. 마귀 들린 자들은 죽음의 세계에 속하기에 무덤으로 상징되는 어둠과 친밀하다. 하느님과 관계를 맺고 하느님의 뜻을 찾으려 애쓰는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하느님과 관계를 맺고 그분이 내게 원하신 뜻이 무엇인가를 고뇌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그렇다면 감사할 일이다. 다행이다. 비록 불완전한 신앙의 삶을 살고 있을지라도 나의 삶의 방향은 빛을 향해 걷고 있기 때문이다. 빛을 향해 걷는 이의 앞길에는 적어도 그림자는 없다. 어둠은 그저 내 발뒤꿈치를 따라 숨 가쁘게 쫒아올 뿐이다.

혹시 나의 삶의 태도가 하느님의 빛 가운데 나아가기를 주저하고 힘겹게 느끼면서 어둠 속에 머물러 있음을 오히려 편안해 하지는 않는지 성찰할 필요가 있다. 만일 그렇다면 나를 붙들고서 자꾸 어둠의 심연으로 밀어 넣으려는 마귀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찾아내 제거하는 작업이 꼭 필요하다.

 

전례는 사실 신성을 드러내는 수많은 상징들로 이루어져 있다. 미사 때 제대는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그런데 생각해 보라. 과연 기꺼이 제대와 가장 가까운 맨 앞좌석에 않기를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그곳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진하게 누리고자 하는 의지를 가지고 있는지. 맨 뒷좌석이나 기둥 뒤에 앉아서 나와 상관없는 하느님의 빛을 요리조리 피해 도망치고 있는 내 영혼의 모습은 아닌지 성찰해야 한다.

 

어둠은 빛을 만나면 스스로 어둠의 옷을 벗고 빛의 영향권 아래 놓이게 된다. 빛이신 예수님과 마주친 어둠, 마귀들은 스스로 자신들의 거취를 결정한다. 빛 가운데서는 견딜 수 없어 또 다른 어둠을 찾게 된다. 예수님은 그저 고요하게 그들 앞에 머물고 있으나 빛의 밝음을 견디지 못하는 마귀들은 예수님께 간청한다. “저희를 쫓아내시려거든 저 돼지 떼 속으로나 들여보내 주십시오.”(마태 8,31)

 

가라!”(마태 8,32)는 예수님의 명령 한마디에 마귀들은 돼지들 속으로 들어갔고 돼지 떼는 모두 물속에 빠져 죽어버렸다. 같은 구마사건을 전하는 마르코 복음은 돼지 떼가 이천 마리쯤 되었다고 전한다. 이처럼 악의 뿌리는 그 수효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다는 의미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곳곳에 수천의 마귀 떼가 도사리고 있으면서 우리를 어둠 속으로 끌어당기고 있음을 자각해야 한다. 빛의 가면을 쓰고 어둠이 아닌 척, 죄악이 아닌 척하며 우리로 하여금 아주 작은 합리화의 구실 하나로도 어둠의 깊은 골짜기, 죄악의 넓은 강을 쉽게 건널 수 있도록 무한 서비스를 하고 있음이다.

 

내 안의 마귀 떼를 깊은 호수에 빠뜨려 죽게 할 수 있도록, 나를 열어 예수님께 다 보여주는 오늘이 되었으면 좋겠다. “가라!”하는 힘있는 주님 말씀이 내 심장을 파고 들어와 나를 휘감고 있어 나로 하여금 사람답게 살지 못하게 하는 온갖 마귀 떼를 다 풀어헤치고 몰아내 주십사 기도하는 하루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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