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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엽동성당

말씀과 함께, 공동체와 더불어

사제의글

2015-06-25 00:35

연중 12주 목요일

2,411
김오석 라이문도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마태 7,21)

 

나는 내 인생의 집을 어디에 기초를 두고 짓고 있는가? 나를 고민스럽게 하고 땀 흘리게 하고 동분서주하게 하는 원초적 힘은 무엇인가? 질문을 던져야 할 때다.

 

폭우가 쏟아져도 태풍이 몰아쳐도 무너지지 않는 내 인생의 집을 짓고 싶은 것은 모든 이의 소망이다. 그러나 기초가 튼튼하지 않으면, 밑돌이 제대로 정초되어 있지 않으면 작은 충격에도 무너져 내리는 것이 공들여 쌓은 탑이다. 공든 탑이 무너지랴? 는 말이 있지만 그 공든 탑이 모래 위에 지어진 것이라면 백 퍼센트 말짱 도루묵이다. 결국 무너진다는 말이다. 조건과 때가 되면 기초가 부실한 건물은 버틸 수 없다.

 

정답은 예수님이라는 반석, 예수님의 가르침과 삶의 모범에 기초한 나의 공든 탑은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스도교 신앙의 본질은 무엇일까? 예수님을 주님이요, 그리스도라고 믿고 고백하는 고백신앙이다. 역사 안에 존재했던 가난한 이들과 작고 약한 이들, 소외되고 눈물 흘리던 이들, 병자들과 죄인들의 친구였던 분, 그들에게 아낌없는 연민과 사랑을 베풀다 결국 마지막 당신의 목숨을 기꺼이 내주셨던 그분을 나의 주님이요 구세주라고 고백하는 고백 신앙이 그 출발이다.

 

그러나 그 고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당신 전부를 내어주며 이루려고 했던 하느님의 통치, 하느님 나라를 위해 행했던 그분의 모든 행위를 내가 행해야 할 이 지상에서의 소명으로 받아들이면서 살아가는 실천이 그 고백신앙을 완성하는 것임을 깨닫고 그대로 행하는 실천신앙이 바로 그리스도교 신앙의 정수다.

 

주님, 주님! 저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고,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일으키지 않았습니까?”(마태 7,22) 라고 항변할 수 있다. 고백의 신앙만으로도 일으킬 수 있는 놀라운 신비다. “믿습니다!”라고 고백하는 그것만으로도 주님께서는 놀라운 당신의 힘을 아낌없이 베풀어 주신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드리는 기도의 능력은 우리의 생각을 넘어서는 놀라움을 우리 앞에 펼쳐 준다는 것이다. 앵무새처럼 입으로만 행하는 고백 신앙만으로도 신앙의 놀라운 기적을 주시는 분이 바로 우리의 주님이시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내게서 물러들 가라.”(마태 5,23)

 

당혹스럽지만 나를 모른다고 하시는 예수님을 향하여 눈을 크게 뜨고 뒤집어질 것까지는 없다.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마지막 한 가지 부족한 것 그것은 우리의 구체적인 행위의 실천이다. 가진 것을 모두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주는 그런 놀라운 실행뿐만 아니라, 만나는 이들 모두에게 나의 처지와 상관없이 보내는 따스한 미소 같은 것, 고통과 슬픔에 힘들어하는 이들 곁에 서서 함께 울어주는 눈물, 폭력과 불의를 자행하는 사람들과 사회 구조에 거룩한 분노를 간직하고 행하는 저항의 몸짓 등. 그런 행위가 주님의 기억에 지울 수 없는 공든 탑으로 하나 둘 아로 새겨진다.

 

주님, 저는 당신의 기억 속에 잊혀진 존재로 살고 싶진 않습니다. 그저 제가 당신을 향해 부르짖었던 숱한 목소리로 남고 싶진 않습니다. 저는 당신의 기억 속에 아로새겨진 찬란하게 빛나는 아름다운 조각이 되고 싶습니다. 제가 그런 무너지지 않는 인생의 소중한 탑을 세울 수 있도록, 캄캄한 어둠 속에서도, 천 길 낭떠러지에서도 한 걸음 더 내 딛을 수 있도록 용기를 허락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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