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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엽동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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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의글

2016-02-18 22:26

사순 1주 금요일

4,747
김오석 라이문도

네가 제단에 예물을 바치려고 하다가, 거기에서 형제가 너에게 원망을 품고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거기 제단에 놓아두고 물러가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여라. 그런 다음 돌아와서 예물을 바쳐라.”(마태 5, 23-24)

 


화해란 다툼을 멈추고 좋지 않은 감정을 푸는 것이다. 맺힌 응어리를 풀어 서로가 자유롭도록 이해하고 배려하는 것이다. 자유는 마지막 남은 감정의 작은 앙금까지 해소하여 서로 이해하고 수용하고 감싸주는 용서로 완성된다. “네가 마지막 한 닢까지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다.”(마태 5,26)

 


화해는 서로 다름을 인정함으로써 평화를 되찾는 과정이다. 서로의 빚을 탕감하고 증오를 사랑으로, 두려움을 신뢰로 바꾸는 과정이다. 화해는 자신의 부족함에 대한 인정에서 시작된다. 결점이 많은 나, 고집불통인 나를 참아주고 변화하기를 기다리는 하느님의 사랑을 깨닫게 되면 진실된 화해가 시작된다. 그러므로 나는 잘했고 상대방이 잘못했다는 시시비비의 논리적 사고를 넘어서 문제의 발단이 내 탓이었음을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기꺼이 용기 있게 상대의 발 앞에 무릎을 꿇는 겸손이 필요하다.

 


하느님께서는 내가 과거에 어떤 사람이었는가를 보고 심판하시지 않는다. 지금 우리가 어떤 사람인가 하는 것이 그분의 기준이다. 이것이 많은 잘못을 저지르며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의 희망이다. 지금 현재, 내 마음에 담겨 있는 것이 무엇이며 바라보는 지향점이 어디이며, 그것이 어떤 행위로 드러나는가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과거를 묻지 마라. 과거는 흘러갔다.’는 것이다.

 


하느님께로 방향 전환을 했다고 말하면서, 회개했다고 말하면서 마음속에 형제에 대한 미움과 질시의 앙금이 남아있다면 그것은 가짜다. 미움의 감정은 상대에 대한 기대로부터 출발한다. 기대에 어긋나는 섭섭함, 실망, 상처, 자존심의 생채기가 상처가 되어 미움의 감정으로 진화한다.

 


그러므로 사람에 대한 기대를 접자. 있는 그대로 상대방을 보아줄 수 있는 너그러움이 필요하다. 하느님도 인내하고 견디어내는 부족하고 못된 그 사람을 나는 왜 기다려줄 수 없단 말인가? 있는 그대로의 부족한 상대방을 연민으로 바라봐주고 기도해줄 수 있어야 하겠다.

 


형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너그럽게 봐주고 용서하는 것은 하느님께 드리는 참된 예배다. 아무리 좋은 예물을 준비했다 하더라도 이 마음이 없으면 예물을 제단 앞에 놓아두고 그 형제를 찾아 나서야 한다는 것이 오늘 복음의 메시지다. 화는 결국 화를 부르고 미소는 결국 미소를 꽃피게 한다.

 


마음, 마음 마음이여! 참으로 알 수가 없구나. 너그러울 때는 온 세상을 다 받아들이다가도 한 번 옹졸해지면 바늘 하나 꽂을 자리가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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